퇴출 게임 (AI)

"오늘부터 새로운 인사 평가 시스템을 도입합니다."

회의실에 모인 전 직원들 앞에서 최 대표가 말했다. 그의 목소리는 차갑고 단호했다. 다람쥐통 같은 대회의실에 앉아있는 백여 명의 직원들은 숨소리 하나 내지 않았다.

"우리 기업의 생존을 위한 불가피한 조치입니다. 이번 분기부터 실시되는 '성과 생존 프로젝트'는 각 부서와 팀, 그리고 개인별 성과를 실시간으로 평가해 하위 10%를 순차적으로 퇴출시키는 시스템입니다."

나는 내 옆자리에 앉은 동료 민석의 얼굴이 하얗게 변하는 것을 느꼈다. 맞은편에 앉은 영업부의 김 부장은 입술을 깨물고 있었다.

"6개월간 총 3단계로 진행되며, 각 단계마다 전체 인원의 10%가 탈락합니다. 최종 생존자들에게는 파격적인 인센티브와 승진 기회가 주어집니다."

대표의 말이 끝나자 회의실은 순간 얼어붙었다가 곧 수군거림으로 가득 찼다. 어떤 이는 분노로 얼굴이 붉어졌고, 또 어떤 이는 공포에 질린 표정이었다. 이미 몇몇은 주변 동료들을 견제하는 시선을 보내고 있었다.

"추가 질문이 없으시면, 자세한 사항은 각 부서장을 통해 전달하겠습니다. 회의를 마치겠습니다."

대표가 회의실을 나가자 회의실은 아수라장이 되었다. 15년 차 과장인 나는 이런 상황이 처음이 아니었다. 2008년 금융위기 때도, 그리고 코로나 시기에도 회사는 구조조정을 했다. 하지만 이렇게 공개적이고 잔인한 방식은 처음이었다.

"진우 과장, 이거 실화냐?" 민석이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게임이라도 된 것 같지? 근데 이건 진짜야. 승자독식의 세상이지." 내가 담담하게 대답했다.

하지만 내 목소리의 담담함과 달리, 내 심장은 쿵쾅거리고 있었다. 나에게는 뇌졸중으로 쓰러진 아버지와 중학생 딸이 있었다. 이혼 후 홀로 딸을 키우는 내게 이 직장은 생명줄이나 다름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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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단계는 팀 간 경쟁이었다. 동일한 업무를 수행하는 A팀과 B팀이 서로 경쟁해 성과가 낮은 팀의 하위 인원이 자동 탈락하는 방식이었다. 우리 마케팅 2팀은 마케팅 1팀과 경쟁해야 했다.

사내 시스템에는 '생존 보드'라는 것이 새로 생겼다. 실시간으로 각 팀과 개인의 성과가 점수로 환산되어 표시되었다. 마치 온라인 게임의 랭킹 시스템 같았다.

이전에는 웃으며 커피를 마시던 동료들이 이제는 서로를 경계하기 시작했다. 팀 회의에서는 누구의 아이디어가 채택될지를 두고 치열한 신경전이 벌어졌다. 야근은 일상이 되었고, 주말 출근도 당연시되었다.

"진우 형, 이번에 내가 준비한 프로젝트 제안서, 어떻게 생각해?"

민석이 내게 물었다. 그는 내가 가장 가깝게 지내는 후배였다. 함께 입사해 6년을 동고동락했다. 그의 제안서는 몇 가지 허점이 있었지만, 기본적으로는 좋은 아이디어였다.

"괜찮은데, 여기 시장 분석 부분이 좀 약해. 좀 더 구체적인 데이터가 필요해."

민석은 고맙다며 자리로 돌아갔다. 하지만 나는 그에게 말하지 않은 것이 있었다. 내가 준비 중인 프로젝트와 너무 유사하다는 것. 누가 먼저 제출하느냐가 중요했다.

그날 밤, 나는 회사에 늦게까지 남아 내 기획을 보완했다. 민석에게 조언한 바로 그 부분을 강화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일찍, 팀장에게 제출했다.

민석이 자신의 기획을 들고 팀장실로 향할 때, 그의 눈에서 배신감이 읽혔다. 나는 잠시 죄책감을 느꼈지만, 곧 마음을 다잡았다. '이건 게임이야. 생존이 목표인 게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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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단계가 끝났을 때, 우리 팀은 간신히 살아남았다. 마케팅 1팀보다 2% 높은 성과를 냈다. 하지만 우리 팀에서도 세 명이 퇴출되었다. 그중 한 명은 결혼을 두 달 앞둔 이 대리였다. 그녀가 짐을 싸는 모습을 보며, 모두는 침묵했다.

두 번째 단계는 개인 간 경쟁이었다. 이제는 같은 팀원끼리도 서로를 견제해야 했다. 개인별 목표가 설정되었고, 그 목표 달성률이 실시간으로 '생존 보드'에 업데이트되었다.

회사 분위기는 더욱 냉랭해졌다. 이전에는 당연했던 정보 공유나 협업이 사라졌다. 모두가 자신의 성과에만 집중했다. 때로는 다른 팀원의 발목을 잡는 일도 있었다.

"진우씨, 이번 금요일에 김 부장님 따님 결혼식이라던데, 참석하시나요?"

커피머신 앞에서 전략기획팀의 서 차장이 물었다. 나는 잠시 고민했다. 김 부장은 우리 팀의 상급자였지만, 금요일은 중요한 프로젝트 마감일이었다.

"아, 네. 물론이죠. 축하드려야죠."

"그렇군요. 저는 마감이 있어서... 아쉽네요."

서 차장의 눈에서 계산하는 빛이 번쩍였다. 그는 내가 프로젝트에 집중하지 못할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나는 그날 밤 딸 지수에게 약속했던 영화 관람을 취소하고 밤새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그리고 금요일 아침, 프로젝트를 제출한 후 결혼식장으로 향했다. 서 차장의 놀란 표정이 기억에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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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단계는 마지막 생존자를 가리는 단계였다. 이제 남은 인원은 전체의 80%였고, 여기서 또 10%가 탈락할 예정이었다. 잔인한 것은, 이 마지막 단계에서는 동료끼리 서로를 평가하는 시스템이 도입되었다는 점이다.

"이번 주 금요일까지 각자 함께 일하고 싶지 않은 동료 3명을 선정해 제출하세요. 이유도 함께 작성하시기 바랍니다."

인사팀의 공지를 받고, 사무실은 더욱 음산해졌다. 이제는 서로의 눈을 마주치는 것조차 어려워졌다. 모두가 자신을 지목하지 않도록 필사적으로 동료들에게 잘 보이려 했다.

점심시간에 혼자 구내식당에 앉아있을 때, 민석이 내 앞에 식판을 놓았다.

"혼자 드시네요, 과장님."

그의 목소리는 친근했지만, 눈빛은 달랐다. 첫 단계에서 있었던 일 이후 우리 사이는 차가워졌다.

"응, 요즘 복잡해서."

"과장님, 솔직히 말해도 될까요? 이번에 과장님 이름을 적을까 생각 중이에요."

나는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직설적인 그의 말에 당황했다.

"왜?"

"그날 제 아이디어를 도용한 것, 알고 있어요. 팀장님께서 말씀하셨거든요."

그의 얼굴에는 미소가 있었지만, 눈은 차갑게 빛났다.

"민석아, 그건..."

"괜찮아요. 이해해요. 다들 생존해야 하니까요. 저도 마찬가지고요."

그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 가슴은 무거웠다. 이렇게 되는 것은 원하지 않았다. 우리는 한때 진정한 동료였다.

금요일이 다가왔다. 나는 밤새 고민했다. 누구의 이름을 적어야 할지. 누구를 탈락시켜야 할지. 내 머릿속은 혼란스러웠다.

그날 아침, 나는 사무실로 향하는 대신 대표실 앞에 섰다. 비서의 의아한 시선 속에 노크를 했다.

"들어오세요."

최 대표는 내가 들어서자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김진우 과장이군요. 무슨 일입니까?"

"대표님, '생존 프로젝트'에 대해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오, 당신은 현재 상위 10% 안에 들어 있는데요. 걱정할 필요 없습니다."

"그게 아닙니다. 이 프로젝트가 우리 회사를 망치고 있습니다."

대표의 눈이 차갑게 빛났다.

"설명해보세요."

"3개월 전만 해도 우리는 서로를 도우며 함께 성장했습니다. 지금은 어떻습니까? 모두가 적이 되었고, 정보는 공유되지 않으며, 협업은 사라졌습니다. 이런 환경에서 어떻게 혁신이 나올 수 있겠습니까?"

내 말이 끝나자 대표는 장시간 침묵했다. 그리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김 과장, 당신이 여기까지 온 것은 용기있는 행동입니다. 하지만 세상은 냉혹합니다. 강한 자만이 살아남는 법이죠."

"그렇다면 우리 회사도 결국 같은 운명을 맞을 겁니다. 모두가 자신만 생각하는 곳에서는 진정한 혁신이 불가능합니다."

대화는 30분 가까이 이어졌다. 나는 마지막에 내 결정을 전했다.

"저는 이 프로젝트에 더 이상 참여하지 않겠습니다. 필요하다면 사직서를 제출하겠습니다."

대표의 표정이 복잡해졌다. 그는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김 과장, 당신의 이야기를 더 듣고 싶군요. 오늘 저녁 7시, 제 사무실로 다시 와주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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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저녁, 대표 사무실에는 나 외에도 여러 부서의 중견 사원들이 모여 있었다. 우리는 각자의 경험과 생각을 나눴다. 대부분이 '생존 프로젝트'의 부작용을 언급했다.

일주일 후, 전체 이메일이 발송되었다.

"'성과 생존 프로젝트'는 오늘부로 중단됩니다. 대신 새로운 협업 중심의 평가 시스템을 도입할 예정입니다. 자세한 사항은 추후 공지하겠습니다."

사무실에는 혼란과 안도가 교차했다. 많은 이들이 내게 다가와 고마움을 표했다. 그중에는 민석도 있었다.

"과장님, 용기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도... 사과드려야 할 것 같아요."

나는 미소지었다. "우리 모두 게임 속 말단 참가자였을 뿐이야. 이제 함께 일하는 방법을 다시 배워야 할 때야."

그날 저녁, 오랜만에 딸과 함께 영화를 보러 갔다. 무언가 커다란 짐을 내려놓은 듯한 기분이었다. 생존은 중요하지만, 그 과정에서 인간성을 잃는다면 그것은 진정한 생존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회사로 돌아가는 길, 나는 이제 어떤 게임에서도 참가자가 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때로는 게임의 규칙 자체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