삐-삐-삐-삐-깽-깽-깽-지이이잉-
새벽 두 시. 모뎀 연결음이 방 안을 채운다. 온 세상이 잠든 시간, 나는 또 다른 세계로 접속한다. 파란 화면이 모니터를 채우고, 하얀 글자들이 하나둘 떠오른다. 하이텔 로그인 화면. ID와 비밀번호를 입력하자 익숙한 메인 화면이 나타난다.
```
[하이텔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1. 전자우편 2. 동호회 3. 뉴스/정보 4. 채팅 5. 게임/오락
```
숫자 2를 누르고 문학 동호회 방으로 들어간다. 회원 목록을 스크롤하다 '별빛'이라는 ID를 발견하고 개인 대화방으로 초대한다.
```
[솔바람] 아직 안 주무셨네요?
[별빛] 네, 오늘도 잠이 안 와서요. 솔바람님은 이 시간에 왜 접속하셨어요?
[솔바람] 낮에는 회사 일로 바빠서, 밤에만 제 시간을 가질 수 있거든요.
[별빛] 그러고 보니 벤처 회사에 다니신다고 하셨죠? 요즘 경기가 안 좋다던데, 괜찮으세요?
```
'경기가 안 좋다.' 별빛의 말이 가슴에 콕 박힌다. 아침마다 라디오에서 들려오는 경제 소식은 점점 암울해지고 있다. 한보 부도 이후로 대기업들의 연쇄 도산 소식이 들려온다. 우리 회사도 최근 웹사이트 구축 프로젝트 두 개가 취소되었다. 부장님의 얼굴이 점점 어두워진다.
```
[솔바람] 아직은 괜찮아요. 인터넷은 미래니까요.
[별빛] 미래... 그거 참 믿음직한 단어네요. 솔바람님은 항상 긍정적이세요.
[솔바람] 그런가요? 사실 저도 불안해요. 다만 불안을 인정하기 싫을 뿐이죠.
[별빛] 솔직하시네요. 그래서 더 마음이 가요.
```
별빛과 나눈 대화가 머릿속을 맴돈다. 우리는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다. 얼굴도, 실제 이름도 모른다. 그저 파란 화면 속에서 서로의 내면을 글자로 주고받을 뿐이다. 그런데도 때로는 가족보다, 직장 동료보다 그녀에게 더 솔직해지는 나를 발견한다.
---
"준호야, 이제 정신 차려야 할 때 아니니? 그 회사 계속 다닐 거야?"
일요일 점심, 부모님 댁에서 아버지의 목소리가 식탁을 가로질렀다. 밥 한 숟갈을 겨우 입에 넣은 참이었다.
"아버지, 저희 회사 괜찮아요. 인터넷이 앞으로 우리 생활을 완전히 바꿔놓을 거예요. 지금은 어려워도..."
"괜찮긴 뭐가 괜찮아! 신문에서는 매일 기업들 도산한다는 소식뿐이야. 삼성전자 같은 대기업 들어갈 수 있는 실력이 있는 애가 무슨 벤처니 뭐니 하는 데서..."
어머니가 조용히 아버지의 팔을 잡았다. "여보, 밥 먹을 때는..."
아버지는 한숨을 쉬었다. "내가 걱정돼서 그러지.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는 모양이구나. 넌 대학 때부터 그랬어. 현실은 생각하지 않고 뭔가 새롭다고, 멋있다고 덤비기만 하고."
식탁 위로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았다. 나는 밥을 입에 밀어 넣었지만 목구멍으로 넘어가지 않았다.
"형이 살 길은 형이 알아서 찾을 거야."
동생 준석이 입을 열었다. 대학교 3학년인 동생은 요즘 취업 준비로 바쁘다. 그런 동생이 나를 변호해주니 고맙지만, 한편으로는 씁쓸했다. 내가 이런 상황이니 동생은 더욱 '안정적인 길'을 찾으려 할 테니까.
아버지는 25년간 중소기업 경리부장으로 일했다. 대학 등록금, 전세금, 생활비... 모든 것을 그 '안정적인 월급'으로 해결해왔다. 그런 아버지에게 내 선택은 이해할 수 없는 모험일 것이다.
집을 나오면서 어머니가 손에 비닐봉지를 쥐어주었다. "김치하고 반찬 좀 싸왔어. 냉장고에 넣어두고 챙겨 먹어."
어머니의 손이 내 손을 오래 붙잡았다. "준호야, 너무 무리하지 마라. 아버지는 네가 잘되길 바라는 마음에 그러시는 거야."
버스를 타고 오면서 창밖을 내다봤다. 거리의 간판들이 흐릿하게 스쳐 지나갔다. '대출', '창업', '전세 자금'... 그리고 곳곳에 붙은 '임대' 팻말들.
세상이 변하고 있었다. 그걸 아버지는 알까? 나도 정말 알고 있을까?
---
"야, 너도 들었냐? 위즈웹이 문 닫았대."
영민이 커피를 들고 내 자리로 다가왔다. 위즈웹은 우리 회사와 비슷한 시기에 창업한 웹디자인 업체였다.
"진짜? 어제까지만 해도 괜찮다고 하지 않았어?"
"그게 다 허세였나 봐. 사장이 빚을 내서 직원들 월급 주다가 더 이상 못 버티고 문 닫았대. 6개월 치 월급이 밀렸다는 소문도 있고."
나는 모니터 속 코드를 응시했다. 우리 회사도 최근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신규 프로젝트는 줄고, 사장님과 부장님의 회의는 길어졌다.
"야, 걱정하지 마. 우리 회사는 괜찮을 거야."
영민이 내 어깨를 툭 쳤다. 하지만 그의 목소리에도 확신이 없었다.
점심시간, 구내식당보다 저렴한 백반집으로 향했다. 요즘은 회사 사람들 모두 절약 모드였다. 식당 TV에서는 경제 뉴스가 흘러나왔다.
"...금융 시장의 불안이 계속되는 가운데, 원-달러 환율이 또다시 급등했습니다. 정부는 시장 안정화 대책을 마련 중이라고 밝혔지만..."
옆 테이블에서 양복 입은 중년 남성들이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IMF 들어오는 건 시간문제라더만. 준비해야 해."
"그러게 말이야. 우리 회사도 이번 주부터 구조조정 시작한다는 소문이 돌아."
IMF. 국제통화기금. 그 단어는 마치 불길한 주문처럼 사람들 사이에 퍼져나가고 있었다.
회사로 돌아오는 길에 영민이 말했다. "혹시 면접 본 데 있냐?"
"아니, 왜?"
"그냥... 만약을 대비해서. 난 어제 이력서 두 군데 넣었어."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면접? 이력서? 그런 생각은 해본 적이 없었다. 이 회사가 망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그날 밤, 하이텔에 접속했을 때 별빛은 이미 접속해 있었다.
```
[솔바람] 별빛님, 오늘은 무슨 책 읽고 계세요?
[별빛] 김훈의 '칼의 노래'요. 임진왜란 시기 이순신 장군 이야기예요.
[솔바람] 어려운 시기에 적절한 책이네요.
[별빛] 맞아요. '칼을 쓰는 자는 칼날을 보지 않는다'는 구절이 있어요. 위기의 순간에는 두려움보다 해야 할 일에 집중해야 한다는 의미 같아요.
```
별빛의 말이 마음에 와닿았다. 요즘 나는 너무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었다.
```
[솔바람] 별빛님, 한 번 만나볼래요? 실제로.
```
화면 속에 내 메시지가 올라오고, 잠시 대답이 없었다.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
[별빛] 갑작스럽네요. 하지만... 좋아요. 언제 만날까요?
```
---
압구정 카페 '블루문'. 약속 시간보다 30분 일찍 도착했다. 초조하게 시계를 보며 커피를 홀짝였다. 별빛... 아니, 이수진씨는 어떤 사람일까? 그녀의 목소리는? 웃음은? 3개월간 파란 화면으로만 만났던 사람을 실제로 만난다는 건 묘한 긴장감을 주었다.
그때 카페 문이 열리고 한 여성이 들어왔다. 짧은 단발머리에 검은 원피스를 입은 그녀는 주변을 둘러보다 내게 시선을 고정했다.
"솔... 아니, 김준호 씨인가요?"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네, 맞습니다. 이수진 씨죠?"
우리는 어색한 인사를 나누고 자리에 앉았다. 온라인에서 나눴던 깊은 대화들이 무색하게, 처음에는 날씨와 카페 분위기 같은 가벼운 주제로 대화를 이어갔다.
"PC통신에서 생각했던 모습과 많이 다른가요?" 수진이 물었다.
"아니요, 글을 통해 상상했던 것보다... 더 밝은 느낌이에요."
"그래요? 준호 씨는 생각보다 조용해 보이네요. 온라인에서는 더 활발했던 것 같은데."
우리는 서로를 발견해가는 과정이 즐거웠다. 수진은 출판사에서 교정 일을 하고 있었고, 소설가가 되는 꿈을 갖고 있었다. 그녀가 말할 때마다 손동작이 활발했고, 눈빛이 반짝였다.
"준호 씨, 솔직히 회사 일은 어때요? 온라인에서는 항상 괜찮다고만 했잖아요."
나는 잠시 망설였다. "사실... 많이 불안해요. 회사가 어려워지고 있어요. 벤처기업이라는 게 이렇게 취약한 줄 몰랐어요."
"그럴 수 있죠. 세상 모든 일이 그렇잖아요. 겉으로 보이는 것과 실제는 항상 달라요."
"수진 씨는 직장에서 만족하세요?"
그녀는 쓴웃음을 지었다. "만족까진 아니지만, 글을 다룬다는 점은 좋아요. 다만 요즘은 출판계도 어려워요. 사람들이 책을 안 사니까."
우리의 대화는 자연스럽게 사회 문제로 이어졌다. 경제 위기, 청년 실업, 불확실한 미래. 하지만 그 모든 무거운 주제 속에서도 수진의 시선은 특별했다. 그녀는 세상을 비관적으로만 보지 않았다. 위기 속에서도 인간의 가능성을 믿었다.
헤어질 시간, 지하철역으로 향하며 수진이 말했다. "준호 씨, 파란 화면 속에서만 솔직할 필요는 없어요. 현실에서도 자기 감정에 정직해도 돼요."
그 말이 내 마음을 두드렸다. 나는 언제부터인가 현실에서의 나와 온라인에서의 나를 분리해왔다. 마치 두 개의 다른 인격처럼.
---
1997년 12월 3일. 그날은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대한민국 정부, IMF에 구제금융 신청... 합의 도출"
회사 로비의 TV 앞에 직원들이 모여 있었다. 모두의 표정이 굳어 있었다. 그것은 단순한 뉴스가 아니었다. 우리 모두의 삶이 변할 것이라는 신호탄이었다.
부장님이 전 직원 미팅을 소집했다. 회의실에 들어서자 사장님의 표정은 이미 모든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여러분, 이미 뉴스를 통해 아시겠지만... 국가적 위기 상황입니다. 우리 회사도 예외가 아닙니다."
사장님의 목소리가 떨렸다. 창업 3년 차, 그는 모든 것을 이 회사에 쏟아부었다.
"불가피하게... 인원 감축을 진행해야 합니다. 전체 인원의 30%를 줄이게 됩니다. 구체적인 명단은 이번 주 금요일에 발표하겠습니다."
회의실을 나오는 직원들의 표정은 제각각이었다. 분노, 불안, 체념. 나는 영민을 찾았지만 그의 자리는 비어 있었다.
그날 저녁, 영민에게 전화를 걸었다. 통화 연결음이 길게 이어졌다.
"여보세요?" 영민의 목소리가 평소보다 낮게 들렸다.
"어디야? 오늘 오후부터 안 보이던데."
"아... 면접 보러 갔었어. 내가 말했잖아, 이력서 넣었다고."
침묵이 이어졌다. 나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준호야." 영민의 목소리가 다시 들렸다. "너도 준비해. 금요일 명단에 누가 오를지 모르니까."
전화를 끊고 창밖을 바라봤다. 서울의 밤거리는 여전히 불빛으로 가득했지만, 뭔가 달라 보였다. 간판들의 빛이 더 흐릿하게 느껴졌다.
그날 밤 PC통신에 접속했지만, 별빛은 보이지 않았다. 대신 문학 동호회 게시판에는 경제 위기에 대한 글들이 올라와 있었다. '위기의 시대, 문학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90년대 한국 사회의 비극'... 무거운 제목들이었다.
다음 날 아침, 출근길 지하철은 평소보다 조용했다. 사람들의 얼굴에는 불안감이 역력했다. 신문 헤드라인은 모두 IMF와 구조조정에 대한 내용이었다.
회사에 도착하자마자 한 부장님이 나를 불렀다.
"준호 씨, 잠깐 시간 있어?"
회의실로 따라 들어갔다. 한 부장은 회사에서 가장 연차가 높은 관리자였다.
"듣자 하니 자네 컴퓨터공학 전공이고, 네트워크 기술도 꽤 안다고?"
"네, 그런 편입니다."
한 부장은 잠시 침묵했다가 말을 이었다. "실은 이번 구조조정에서... 자네 같은 인재는 보호하려고 해. 하지만 회사 상황이 그렇지 않아."
내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한 가지 제안이 있는데... 개발팀에서 1~2명 정도는 더 줄여야 해. 자네가 팀에서 누가 가장... 그러니까, 덜 필요한 인원인지 의견을 줄 수 있겠나?"
순간 머리가 하얘졌다. 그가 지금 동료를 해고 명단에 올리라는 건가?
"시간이 필요하시면 내일까지 생각해보게. 하지만 자네도 알다시피, 이건 자네 미래와도 연결된 문제야."
회의실을 나오는데 다리가 후들거렸다. 책상으로 돌아와 앉았지만 일에 집중할 수 없었다. 옆자리의 영민, 그리고 다른 동료들의 얼굴이 스쳐 지나갔다.
점심시간, 혼자 사내 카페테리아에 앉아 있는데 휴대폰이 울렸다. 어머니였다.
"준호야..." 어머니의 목소리가 떨렸다. "아버지가... 회사에서 권고사직 당하셨어."
가슴이 무너져 내렸다. 25년간 한결같이 출근하셨던 아버지가, 그 평범하고 성실한 일상이 하루아침에 무너진 것이다.
"아버지는 어떠세요?"
"말없이 방에만 계셔. 저녁에 한번 들러줄 수 있니?"
---
아버지의 방문 앞에서 망설였다. 문을 두드리고 들어가자, 아버지는 창가에 앉아 밖을 바라보고 계셨다.
"아버지..."
돌아보신 아버지의 얼굴은 내가 기억하는 것보다 훨씬 늙어 보였다. 항상 자신감에 차 있던 그 얼굴에 이제 깊은 피로감이 서려 있었다.
"들어왔구나. 밥은 먹었니?"
아버지의 담담한 목소리에 오히려 가슴이 아팠다.
"네... 아버지, 많이 힘드시죠?"
아버지는 잠시 침묵하다가 말했다. "나는 괜찮다. 너무 걱정하지 마라."
방 안에는 아버지의 회사 물품들이 박스에 담겨 있었다. 25년의 흔적들. 상장, 기념품, 사진들...
"준호야." 아버지가 다시 입을 열었다. "네가 회사 그만두는 게 좋겠다."
"네?"
"인터넷이고 뭐고... 이런 때는 안정적인 게 최고야. 큰 회사 들어갈 수 있는 기회가 있을 때 들어가."
나는 마음 속에서 반박의 말들이 솟구쳤지만, 아버지의 지친 눈을 보니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의 충고는 50여 년을 살아온 인생의 경험에서 나온 것이었다.
"아버지, 생각해볼게요."
집을 나오면서 어머니가 따라나왔다. "준호야, 아버지 말씀은 너무 신경 쓰지 마. 네 길은 네가 가야지. 다만... 많이 힘들텐데, 혼자 끙끙 앓지 말고 이야기하렴."
어머니의 말에 가슴이 뭉클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 창밖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한 부장의 제안, 영민의 면접, 아버지의 실직... 모든 것이 빠르게 변하고 있었다.
---
금요일 아침. 회사에 도착하자 로비에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인사팀 게시판에 구조조정 명단이 게시된 것이다.
숨을 깊게 들이마시고 게시판으로 다가갔다. 이름들을 하나하나 읽어내려갔다. 내 이름은 없었다. 안도의 한숨이 나오는 순간, 명단 중간에 익숙한 이름이 눈에 들어왔다.
박영민.
사무실로 달려갔지만 영민의 자리는 비어 있었다. 그의 책상 위에는 이미 짐을 정리한 흔적이 있었다. 탁상시계, 가족사진, 머그컵... 모두 사라졌다.
한 부장이 내게 다가왔다. "결정은 했나?"
나는 그를 똑바로 바라봤다. 가슴 속에서 무언가가 확실해졌다.
"부장님, 죄송합니다. 저는 동료를 평가할 위치에 있지 않습니다."
한 부장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래... 그럼 자네도 다음 차례가 될 수 있다는 걸 알고 있겠지?"
"알고 있습니다."
부장이 돌아간 후, 영민에게 전화를 걸었다. 신호음만 길게 이어졌다.
그날 저녁, 늦게까지 회사에 남아 있었다. 빈 사무실에서 컴퓨터 모니터만 파란빛을 내뿜고 있었다. 마치 PC통신 화면처럼.
하이텔에 접속했다. 별빛이 온라인이었다.
```
[솔바람] 오늘 우리 회사 구조조정 명단이 나왔어요. 제 친한 동료가 해고됐어요.
[별빛] 정말 마음이 아프겠네요. 연락은 해보셨어요?
[솔바람] 연락이 안 돼요. 전화를 안 받아요.
[별빛] 시간이 필요한 것 같아요. 준호 씨는 괜찮아요?
[솔바람] 저도 잘 모르겠어요. 제가 살아남은 건 다행인데, 왜 이렇게 마음이 무거운지...
[별빛] 그게 인간이에요. 살아남았다는 안도감과 동시에 죄책감을 느끼는 거죠.
```
별빛의 말이 마음에 와닿았다. 지금 나는 안도감과 죄책감 사이에서 갈등하고 있었다.
```
[솔바람] 사실... 더 심각한 고민이 있어요. 부장님이 저에게 동료 중 누가 해고되어야 하는지 의견을 달라고 했어요. 제가 무슨 말을 하느냐에 따라 누군가의 운명이 결정될 수도 있었어요.
[별빛] 큰 압박감이었겠네요. 어떻게 하셨어요?
[솔바람] 거절했어요. 하지만 그게 옳은 결정이었는지는 모르겠어요. 이제 저도 다음 구조조정 대상이 될 수도 있어요.
[별빛] 어떤 선택이 옳은지는 누구도 확실히 알 수 없어요. 다만 준호 씨가 자신의 가치관에 따라 행동한 것 같아요. 그 자체로 의미가 있지 않을까요?
```
별빛의 말에 위안을 받았다. 대화를 나누다 보니 마음이 조금씩 가벼워졌다.
```
[솔바람] 아버지도 회사에서 권고사직을 당하셨어요. 25년간 다니신 회사인데...
[별빛] 많이 힘드시겠네요. 아버님은요?
[솔바람] 겉으로는 괜찮은 척하시지만, 많이 상처받으신 것 같아요. 그리고 저에게 회사를 그만두라고 하세요.
[별빛] 아버님 입장에서는 당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조언하시는 거겠죠. 준호 씨는 어떻게 할 생각이에요?
[솔바람] 솔직히 모르겠어요. 이 회사를 계속 다녀야 할지, 더 안정적인 곳을 찾아야 할지... 인터넷의 미래를 믿지만, 당장의 현실은 너무 불안정해요.
[별빛] 결정을 서두를 필요는 없을 것 같아요. 지금은 아버님과 함께 이 어려운 시간을 지내는 것도 중요하지 않을까요?
```
별빛의 말이 내 마음을 진정시켰다. 오늘 밤은 부모님 댁에 가서 함께 있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솔바람] 별빛 씨, 저번에 만났을 때보다 더 많은 얘기를 나누고 싶어요. 이 상황이 좀 나아지면... 다시 만날 수 있을까요?
[별빛] 물론이죠. 언제든지요. 그때는 파란 화면 속이 아닌, 현실에서의 솔직한 모습으로 만나요.
```
PC통신을 끄고 회사를 나섰다. 12월의 찬 공기가 얼굴을 때렸다. 거리는 여전히 크리스마스 장식으로 반짝이고 있었지만, 사람들의 발걸음은 무거워 보였다.
버스를 타고 부모님 댁으로 향했다. 창밖으로 보이는 서울의 밤거리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이 위기가 언제 끝날지, 앞으로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 아직 알 수 없었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했다. 파란 화면 속에서만 솔직했던 내가, 이제는 현실에서도 내 가치관에 따라 행동하기 시작했다는 것.
부모님 댁 현관 앞에 서서 깊은 숨을 들이마셨다. 문을 두드렸다. 어머니가 문을 열었고, 놀란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준호야, 웬일이니?"
"아버지와 얘기 좀 하려고요."
거실로 들어서자 아버지가 TV를 보고 계셨다. 경제 뉴스였다. 아버지는 나를 보고 TV를 껐다.
"아버지, 이야기 좀 할까요?"
나는 소파에 앉아 지난 몇 달간 회사에서 있었던 일, 오늘 있었던 구조조정, 그리고 한 부장의 제안과 내 결정에 대해 이야기했다. 아버지는 묵묵히 듣고 계셨다.
"아버지 말씀대로 세상이 많이 어려워졌어요. 하지만... 저는 제가 믿는 길을 가보려고 해요. 설사 실패하더라도, 그건 제 선택이니까요."
아버지의 눈빛이 흔들렸다. 그는 잠시 침묵하다가 말했다.
"준호야... 아버지는 네가 안전한 길을 가길 바랐다. 25년간 한 회사에서 일하며 안정을 추구했지만, 결국 그 안정도 순간이었어. 어쩌면... 네가 옳을지도 모르겠다."
아버지의 손이 내 어깨를 꾹 쥐었다. 그의 눈에는 걱정과 함께 이해의 빛이 있었다.
"네 길을 가거라. 다만 혼자가 아니라는 걸 기억하렴."
그날 밤, 부모님 집 내 옛 방에 누워 창밖의 별을 바라봤다. 별빛... 이수진과 나눈 대화가 떠올랐다. 그녀가 온라인에서 '별빛'이라는 ID를 쓴 것처럼, 나도 '솔바람'이라는 이름으로 숨어왔다. 하지만 이제는 달랐다.
파란 화면 너머에서만 존재하던 내 진짜 모습이, 이제는 현실 속으로 걸어 나오고 있었다. 불확실한 미래가 두렵지만, 그 두려움과 함께 걸어가는 법을 배우고 있었다.
창밖의 별이 반짝였다. 마치 PC통신 속 별빛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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